슈퍼 밀리언셀러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
13년 전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재미 삼아 ‘귀신 얘기’를 써서 올리던 공학자가 있었다. 그의 글은 나중에 850만부나 팔린 책 ‘퇴마록’으로 거듭났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 그에게는 공학적 마인드로 글을 집필하는 ‘엔지니어’의 힘이 있다.
“귀신 얘기가 비과학적이라고요? 하지만 귀신이 없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슈퍼 밀리언셀러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41)씨는 공대 출신답게 자신의 소설에 귀신을 등장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퇴마록은 귀신을 물리치는 퇴마사들의 무용담을 흥미진진하게 다룬 소설로 국내 창작물 가운데 이문열의 ‘삼국지’(1500만부)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850만부)를 기록했다.
서울공대 석사(기계설계) 출신인 그는 글을 쓰던 초창기에 주위에서 ‘공돌이가 무슨 글을 쓰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우혁 작가는 “글을 쓰는데 왕도가 어디 있느냐”며 “공학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고 항변한다.
수천권 탐독은 기본, 현지답사까지
이 작가는 한때 ‘귀신 얘기’ 퇴마록 덕분에 원래 신기(神氣)가 있던 박수무당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글을 쓰고 생각하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옹골찬 ‘공돌이 작가’다.
“공학은 근본적으로 현상을 보고 파악하는 학문으로 가설을 세워 놓고 논증하는 단계를 거쳐요. 가설은 자유롭게 세울 수 있죠. 귀신이 없다는 증거를 못 찾겠다면 귀신 얘기를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이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퇴마록 시리즈를 완간하는 동안 그가 살펴본 책은 족히 2000권이 넘는다. 이 가운데 직접적인 도움을 얻은 책만 250권으로 이들 모두 이야기의 근거를 제시하는 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글을 쓸 때는 관련서적을 수십권씩 늘어놓고 이것저것 참고하는 게 그의 습관이다. 그의 작품활동은 마치 공학자가 논문을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기원전 2700년경을 시대 배경으로 한 소설 ‘치우천왕기’를 집필하려고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축구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유명한 치우천왕에 대한 기록을 찾아 고서를 뒤지는 작업은 기본이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중국까지 현지답사했다.
그는 “우리 조상 치우에 대해선 전설에 가까운 기록밖에 없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다”며 “고대인이 야만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대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뉴기니나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직접 살펴본 결과 기술은 떨어지지만 그들의 두뇌활동이나 전략은 현대인만큼 치열했다고 한다. 치우천왕기는 2003년에 1권이 나왔다.
온라인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
그는 번듯한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거나 유명 작가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글을 쓰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PC통신이었다.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에서 에어백을 개발하던 1993년 당시 그는 짬짬이 하이텔에서 무서운 괴담을 재밌게 읽다가 하루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엄청난 조회수를 확인하고는 겁이 덜컥 났어요. 사실 귀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거였는데…. 그 길로 서점에 가서 60권이 넘는 관련서적을 샀어요. 귀신, 신화나 전설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글을 써나갔죠.”
그가 PC통신에 연재한 소설은 날이 갈수록 인기가 더해 그의 소설에 푹 빠진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하루라도 연재를 거르면 ‘당신의 글을 보는 재미로 사는데 왜 글을 올리지 않느냐’는 애정 어린 e메일이 쇄도했다.
퇴마록의 탄생
이렇게 시작해 2001년까지 19권(‘퇴마록 해설집’ 제외)으로 마무리한 작품이 바로 퇴마록이었다. 퇴마록에는 다양한 형식의 글이 담겨있다. 그는 “퇴마록은 단편에서 장편까지, 콩트나 판타지 등을 옴니버스식으로 실험한 작품”이라며 “실력이나 구성력이 없던 초창기 시절에 절차탁마한 ‘습작’인 셈”이라고 말한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포스트모던이랄까.
지금은 ‘온라인 글쓰기’가 활발해 문학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학계에서 ‘왕따’를 당했고 비평가는 그의 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저변이 넓어진 게 장점”이라며 “질이 떨어지는 글도 있지만 ‘동네 축구’도 좋은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공학도에서 스타작가로 변신한 그는 잠시 벤처사업이라는 외도를 하기도 했다. 퇴마록의 성공 덕분에 벌어들인 수십억원을 게임사업에 투자했다. 1995년 자신의 소설을 컴퓨터게임으로 제작하기 위해 회사를 차렸으나 5년 만에 접었다.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사람을 부리는 수완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의 조화
그는 문학 못지않게 연극, 뮤지컬, 고전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대학 시절부터 아마추어 연극과 뮤지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10편 이상의 극을 연출했다. 1993년에는 모차르트의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각색해 연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오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가는 고전음악 가운데 바그너 작품을 좋아한다. 한번은 러시아의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가 한국에 와서 바그너 오페라를 나흘간 지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열 일 제쳐두고 공연장에서 꿈같은 나흘을 보냈다. 왜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표현이 강렬하고 상상력을 표출하는데 답답함이 없어서”란 대답이 돌아온다. 이 평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대중문학을 지킬 겁니다. 순수문학에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재미있는 글이 나쁜 글인가요? 재미있으면서도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잖아요. ‘해리포터’나 ‘다빈치 코드’처럼 한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지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 작가는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그랬다면 그의 글이 기성문단의 틀에 갇히고 말았을 터라는 것이다. ‘퇴마록’ 역시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출처 : LG사이언스랜드 (http://www.lg-s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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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재미 삼아 ‘귀신 얘기’를 써서 올리던 공학자가 있었다. 그의 글은 나중에 850만부나 팔린 책 ‘퇴마록’으로 거듭났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 그에게는 공학적 마인드로 글을 집필하는 ‘엔지니어’의 힘이 있다.
“귀신 얘기가 비과학적이라고요? 하지만 귀신이 없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슈퍼 밀리언셀러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41)씨는 공대 출신답게 자신의 소설에 귀신을 등장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퇴마록은 귀신을 물리치는 퇴마사들의 무용담을 흥미진진하게 다룬 소설로 국내 창작물 가운데 이문열의 ‘삼국지’(1500만부)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850만부)를 기록했다.
서울공대 석사(기계설계) 출신인 그는 글을 쓰던 초창기에 주위에서 ‘공돌이가 무슨 글을 쓰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우혁 작가는 “글을 쓰는데 왕도가 어디 있느냐”며 “공학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고 항변한다.
수천권 탐독은 기본, 현지답사까지
이 작가는 한때 ‘귀신 얘기’ 퇴마록 덕분에 원래 신기(神氣)가 있던 박수무당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글을 쓰고 생각하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옹골찬 ‘공돌이 작가’다.
“공학은 근본적으로 현상을 보고 파악하는 학문으로 가설을 세워 놓고 논증하는 단계를 거쳐요. 가설은 자유롭게 세울 수 있죠. 귀신이 없다는 증거를 못 찾겠다면 귀신 얘기를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이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퇴마록 시리즈를 완간하는 동안 그가 살펴본 책은 족히 2000권이 넘는다. 이 가운데 직접적인 도움을 얻은 책만 250권으로 이들 모두 이야기의 근거를 제시하는 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글을 쓸 때는 관련서적을 수십권씩 늘어놓고 이것저것 참고하는 게 그의 습관이다. 그의 작품활동은 마치 공학자가 논문을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기원전 2700년경을 시대 배경으로 한 소설 ‘치우천왕기’를 집필하려고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축구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유명한 치우천왕에 대한 기록을 찾아 고서를 뒤지는 작업은 기본이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중국까지 현지답사했다.
그는 “우리 조상 치우에 대해선 전설에 가까운 기록밖에 없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다”며 “고대인이 야만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대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뉴기니나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직접 살펴본 결과 기술은 떨어지지만 그들의 두뇌활동이나 전략은 현대인만큼 치열했다고 한다. 치우천왕기는 2003년에 1권이 나왔다.
온라인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
그는 번듯한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거나 유명 작가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글을 쓰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PC통신이었다.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에서 에어백을 개발하던 1993년 당시 그는 짬짬이 하이텔에서 무서운 괴담을 재밌게 읽다가 하루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엄청난 조회수를 확인하고는 겁이 덜컥 났어요. 사실 귀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거였는데…. 그 길로 서점에 가서 60권이 넘는 관련서적을 샀어요. 귀신, 신화나 전설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글을 써나갔죠.”
그가 PC통신에 연재한 소설은 날이 갈수록 인기가 더해 그의 소설에 푹 빠진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하루라도 연재를 거르면 ‘당신의 글을 보는 재미로 사는데 왜 글을 올리지 않느냐’는 애정 어린 e메일이 쇄도했다.
퇴마록의 탄생
이렇게 시작해 2001년까지 19권(‘퇴마록 해설집’ 제외)으로 마무리한 작품이 바로 퇴마록이었다. 퇴마록에는 다양한 형식의 글이 담겨있다. 그는 “퇴마록은 단편에서 장편까지, 콩트나 판타지 등을 옴니버스식으로 실험한 작품”이라며 “실력이나 구성력이 없던 초창기 시절에 절차탁마한 ‘습작’인 셈”이라고 말한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포스트모던이랄까.
지금은 ‘온라인 글쓰기’가 활발해 문학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학계에서 ‘왕따’를 당했고 비평가는 그의 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저변이 넓어진 게 장점”이라며 “질이 떨어지는 글도 있지만 ‘동네 축구’도 좋은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공학도에서 스타작가로 변신한 그는 잠시 벤처사업이라는 외도를 하기도 했다. 퇴마록의 성공 덕분에 벌어들인 수십억원을 게임사업에 투자했다. 1995년 자신의 소설을 컴퓨터게임으로 제작하기 위해 회사를 차렸으나 5년 만에 접었다.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사람을 부리는 수완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의 조화
그는 문학 못지않게 연극, 뮤지컬, 고전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대학 시절부터 아마추어 연극과 뮤지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10편 이상의 극을 연출했다. 1993년에는 모차르트의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각색해 연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오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가는 고전음악 가운데 바그너 작품을 좋아한다. 한번은 러시아의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가 한국에 와서 바그너 오페라를 나흘간 지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열 일 제쳐두고 공연장에서 꿈같은 나흘을 보냈다. 왜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표현이 강렬하고 상상력을 표출하는데 답답함이 없어서”란 대답이 돌아온다. 이 평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대중문학을 지킬 겁니다. 순수문학에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재미있는 글이 나쁜 글인가요? 재미있으면서도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잖아요. ‘해리포터’나 ‘다빈치 코드’처럼 한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지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 작가는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그랬다면 그의 글이 기성문단의 틀에 갇히고 말았을 터라는 것이다. ‘퇴마록’ 역시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출처 : LG사이언스랜드 (http://www.lg-s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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