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1 22:42
2008.02.01 09:28


임재범이 다시 돌아왔다.
ㅎㅎㅎ

임재범이 4년 만에 발표한 온라인 싱글 겨울편지

역시 굿이야..ㅎㅎㅎ


관련기사

'존경하는 인물들 > 임재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재범 - 겨울편지 신곡 발표  (0) 2008.02.01
임재범 동영상들..  (0) 2006.10.09
'고해' 기도문  (0) 2006.09.18
임재범 그는 누구인가?  (0) 2006.09.18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7.12.28 17:2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저자 : 한명기
출판사 : 역사비평사
출판연월 : 2000년 07월
가격 : 9,000원
책소개 : 광해군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정리하고 그를 둘러싼 선입견을 비판적으로 다룬 내용. 폭군인가 아닌가, 연산군과는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는 가 등 흥미를 끌만한 주제를 바탕으로 광해군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으며 명, 청 교체기에 탁월한 실리외교를 펼쳐 전쟁을 막은 군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승자의 편인 역사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패자의 진실을 규명하는 역사서




사람들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역사상 존재하는 수많은 왕들 중에서 내가 존경하는 왕을 뽑자면 광해군과 정조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뭐 두 사람다 역사상에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내가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세종을 존경하는 역사상 왕으로 많이들 뽑을 것이다. 분명 세종이 한글창제와 과학 기술, 문화적인 면에서 전후를 불문한고 우수한 업적을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그 세종대의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많은 업적들은 그 당시의 우수한 업적일 분 그것들이 후세로 제대로 전해지면서 발전하지 못했고, 그리고 또한 세종이라는 인물도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의 엄청난 왕권강화에 의한 안정된 왕권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샴페인을 떠트리기만 하면 되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세종이 훌륭한 것은 또한 사실이지만, 그가 정말로 역대 수많은 왕들 중에서 단연 뛰어난 왕인가에 대해서는 잘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 세종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난 다른 어찌보면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광해군과 정조를 더 높이 평가해 주고 싶을 뿐이다.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로 정통성 부분 또한 임진왜란이라는 대 전란 속에서 세종과 같은 굳건한 왕권강화를 이룩하지 못한 비운의 왕이었고, 정조 또한 아버지 사도세자로 인해 그에게 강력한 왕권이 전래되지 못하므로 인해서 생을 마감하게 된 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두명의 왕을 존경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만 했기 때문에 먼저 선듯 광해군에 관한 책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책은 광해군의 어린 시절부터 왜 그가 탁월하다고 할 정도의 외교정책을 펼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왜 그가 결국은 폭군으로 몰려 인조반정을 맞이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들을 서술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광해군이 아깝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가 선조의 정통왕자로서 세종 처럼 강력한 왕권아래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칠 수만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또한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을 헛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우리나라의 통치구조는 군주제였다.
그리고 역사에서 말해주듯 군주제에서 왕의 권력의 크기에 따라서 한 나라의 운명이 자지우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입장에서야 조금은 이해가 불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왕권의 힘의 유무에 따라서 한나라의 운명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조선 말 우리나라가 일본에 치욕을 당하게 된 이유도 정조가 죽고 난후 순조의 즉위부터 외척의 강세로 인해서 서서히 나라가 말해가고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그리고 세종때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모든 분야에서 발굴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광해군은 뛰어난 외교가였던 것은 사실인거 같다. 뭐 인조반정으로 인해서 광해군에 대한 기록들이 부정적으로 꾸며져 있고 그리고 내가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정확하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 동안 내가 보고 알고 있던 지식의 범위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명청 교체기에서는 뛰어난 외교수환을 보여주었으며, 강력한 통치기반을 달성할려고 노력을 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광해군의 잘못은 단지 그러한 강력한 통치기반을 달성하는 과정에서의 실패가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즉, 광해군이 즉위하므로 인해서 북인들의 권력집중으로 인해서 단지 권력에서 밀려난 서인과 남인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광해군이 희생양이 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광해군을 제대로 다시 한번 평가를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단지 권력에 의해서 밀려난 불운의 왕일뿐, 폭군도 그렇다고 무능한 군주도 아닌..
역사상으로 봤을 때 정말로 뛰어난 훌륭한 군주였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런 훌륭한 군주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은 지식을 얻기를 바라고 나 혼자만이라도 광해군에 대해서 존경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 책의 정말로 잘 서술한 부분을 찾자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는 역사교과서의 첫 페이지 처럼 저자는 각 광해군대의 파트 부분을 설명을 하면서 그걸 지금의 현재에 적용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 주므로 인해서 조선사람들이 느꼈던 재조지은을 현재의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도우러 왔던 미국에 대해서 전쟁 직후 미국인에 대해서 느꼈던 우리 한국인들의 고마워 했었던 마음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역사를 배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고.
현재의 외교를 담당하는 정부관료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해 주고 싶다.





2007년 12월 27일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
다 읽었다..^^

다음에는 일단은 정조에 대해서 또 알아보고..

ㅎㅎㅎ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7.06.13 09:0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의 유품 320여 점이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된다.

고려대는 14일 오전 11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이 박사의 연구노트 200여 권과 편지 80여통, 사진 35장 등 유품의 기증식을 연다고 12일 발표했다. 이 박사가 42세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한 지 30주년(16일)을 맞아서다. 기증품 중 연구노트는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 유학시절에 이 박사에게서 논문지도를 받았고 최근 이 박사의 평전을 낸 강주상 고려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가 내놓았고 편지 등은 이 박사의 동생인 이철웅씨 소장품이다.


전체기사 보기(중앙일보)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10.09 19:03



임재범 '고해' 라이브







임재범 'Rock in Korea' 라이브









임재범 '가로수 그늘 아래서면' 뮤직비디오

'존경하는 인물들 > 임재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재범 - 겨울편지 신곡 발표  (0) 2008.02.01
임재범 동영상들..  (0) 2006.10.09
'고해' 기도문  (0) 2006.09.18
임재범 그는 누구인가?  (0) 2006.09.18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10.03 21:12
/ 슈퍼 밀리언셀러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
13년 전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재미 삼아 ‘귀신 얘기’를 써서 올리던 공학자가 있었다. 그의 글은 나중에 850만부나 팔린 책 ‘퇴마록’으로 거듭났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 그에게는 공학적 마인드로 글을 집필하는 ‘엔지니어’의 힘이 있다.

“귀신 얘기가 비과학적이라고요? 하지만 귀신이 없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슈퍼 밀리언셀러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41)씨는 공대 출신답게 자신의 소설에 귀신을 등장시킨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퇴마록은 귀신을 물리치는 퇴마사들의 무용담을 흥미진진하게 다룬 소설로 국내 창작물 가운데 이문열의 ‘삼국지’(1500만부) 다음으로 많은 판매부수(850만부)를 기록했다.

서울공대 석사(기계설계) 출신인 그는 글을 쓰던 초창기에 주위에서 ‘공돌이가 무슨 글을 쓰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우혁 작가는 “글을 쓰는데 왕도가 어디 있느냐”며 “공학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글을 써왔다”고 항변한다.


/ 수천권 탐독은 기본, 현지답사까지
이 작가는 한때 ‘귀신 얘기’ 퇴마록 덕분에 원래 신기(神氣)가 있던 박수무당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글을 쓰고 생각하는 과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옹골찬 ‘공돌이 작가’다.

“공학은 근본적으로 현상을 보고 파악하는 학문으로 가설을 세워 놓고 논증하는 단계를 거쳐요. 가설은 자유롭게 세울 수 있죠. 귀신이 없다는 증거를 못 찾겠다면 귀신 얘기를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이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퇴마록 시리즈를 완간하는 동안 그가 살펴본 책은 족히 2000권이 넘는다. 이 가운데 직접적인 도움을 얻은 책만 250권으로 이들 모두 이야기의 근거를 제시하는 자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글을 쓸 때는 관련서적을 수십권씩 늘어놓고 이것저것 참고하는 게 그의 습관이다. 그의 작품활동은 마치 공학자가 논문을 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기원전 2700년경을 시대 배경으로 한 소설 ‘치우천왕기’를 집필하려고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표축구팀 서포터즈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유명한 치우천왕에 대한 기록을 찾아 고서를 뒤지는 작업은 기본이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중국까지 현지답사했다.

그는 “우리 조상 치우에 대해선 전설에 가까운 기록밖에 없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다”며 “고대인이 야만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고대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뉴기니나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직접 살펴본 결과 기술은 떨어지지만 그들의 두뇌활동이나 전략은 현대인만큼 치열했다고 한다. 치우천왕기는 2003년에 1권이 나왔다.


/ 온라인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
그는 번듯한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거나 유명 작가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글을 쓰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PC통신이었다. 한국자동차부품연구원에서 에어백을 개발하던 1993년 당시 그는 짬짬이 하이텔에서 무서운 괴담을 재밌게 읽다가 하루는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엄청난 조회수를 확인하고는 겁이 덜컥 났어요. 사실 귀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쓴 거였는데…. 그 길로 서점에 가서 60권이 넘는 관련서적을 샀어요. 귀신, 신화나 전설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글을 써나갔죠.”

그가 PC통신에 연재한 소설은 날이 갈수록 인기가 더해 그의 소설에 푹 빠진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하루라도 연재를 거르면 ‘당신의 글을 보는 재미로 사는데 왜 글을 올리지 않느냐’는 애정 어린 e메일이 쇄도했다.


/ 퇴마록의 탄생
이렇게 시작해 2001년까지 19권(‘퇴마록 해설집’ 제외)으로 마무리한 작품이 바로 퇴마록이었다. 퇴마록에는 다양한 형식의 글이 담겨있다. 그는 “퇴마록은 단편에서 장편까지, 콩트나 판타지 등을 옴니버스식으로 실험한 작품”이라며 “실력이나 구성력이 없던 초창기 시절에 절차탁마한 ‘습작’인 셈”이라고 말한다.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포스트모던이랄까.

지금은 ‘온라인 글쓰기’가 활발해 문학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학계에서 ‘왕따’를 당했고 비평가는 그의 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저변이 넓어진 게 장점”이라며 “질이 떨어지는 글도 있지만 ‘동네 축구’도 좋은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

공학도에서 스타작가로 변신한 그는 잠시 벤처사업이라는 외도를 하기도 했다. 퇴마록의 성공 덕분에 벌어들인 수십억원을 게임사업에 투자했다. 1995년 자신의 소설을 컴퓨터게임으로 제작하기 위해 회사를 차렸으나 5년 만에 접었다.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사람을 부리는 수완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


/ 과학과 예술의 조화
그는 문학 못지않게 연극, 뮤지컬, 고전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대학 시절부터 아마추어 연극과 뮤지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10편 이상의 극을 연출했다. 1993년에는 모차르트의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각색해 연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오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가는 고전음악 가운데 바그너 작품을 좋아한다. 한번은 러시아의 마에스트로 게르기예프가 한국에 와서 바그너 오페라를 나흘간 지휘한 적이 있다. 당연히 열 일 제쳐두고 공연장에서 꿈같은 나흘을 보냈다. 왜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하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표현이 강렬하고 상상력을 표출하는데 답답함이 없어서”란 대답이 돌아온다. 이 평가는 그의 작품을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대중문학을 지킬 겁니다. 순수문학에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재미있는 글이 나쁜 글인가요? 재미있으면서도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잖아요. ‘해리포터’나 ‘다빈치 코드’처럼 한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지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 작가는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그랬다면 그의 글이 기성문단의 틀에 갇히고 말았을 터라는 것이다. ‘퇴마록’ 역시 세상의 빛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출처 : LG사이언스랜드 (http://www.lg-sl.net)
원문보기

'존경하는 인물들 > 그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우혁에 관한..  (0) 2006.10.03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09.18 19:26

제갈 량 [, 181~234]

중국 삼국시대 촉한(:220∼263)의 정치가·전략가.
별칭 자 공명, 시호 충무, 와룡선생
국적 중국 삼국시대 촉한
활동분야 정치·군사
출생지 중국 산둥성

자 공명(). 시호 충무(). 낭야군 양도현( : ) 출생. 호족()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하여 형주(:)에서 숙부 제갈 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하여 사관()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 일컬어졌다.

207년( 12) 위()의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예로써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를 진언()하고 '군신수어지교()'를 맺었다. 이듬해, 오()의 손권()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익주()를 유비의 영유()로 하였다. 그후도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221년( 1) 한()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는 어린 후주() 유선()을 보필하여 재차 오()와 연합, 위()와 항쟁하였으며, 생산을 장려하여 민치()를 꾀하고, 윈난[]으로 진출하여 개발을 도모하는 등 촉()의 경영에 힘썼으나 위()와의 국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국세가 기울어 가는 가운데, 위의 장군 사마의()와 오장원(:西)에서 대진 중 병몰하였다.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 《후출사표()》는 천고()의 명문으로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일컬어졌다.


관련 서적
http://www.yes24.com/searchCenter/searchResult.aspx?keywordAd=&qdomain=%C0%FC%C3%BC&query=%C1%A6%B0%A5%B0%F8%B8%ED

'존경하는 인물들 > 제갈공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공명  (0) 2006.09.18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09.18 19:20
제게 있어 그녀는 단 하나의 길임을 용서 하소서.
제게 있어 그녀는 아침이며, 제게 있어 그녀는 생명임을 용서하소서.
제 자리가 아님을 알며, 감히 그녀를 탐함을 용서하시고, 그래도 후회하지 않음을 용서하소서.
이건 제 뜻이 아니었으나, 오히려 감사함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소서.
당신이 가르친 그 사랑을 그녀 앞에 제가 놓게 하시고, 사람의 절망과 허무는 제게 버려,
그녀 앞엔 아름다움만이 있게 하소서.

'존경하는 인물들 > 임재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재범 - 겨울편지 신곡 발표  (0) 2008.02.01
임재범 동영상들..  (0) 2006.10.09
'고해' 기도문  (0) 2006.09.18
임재범 그는 누구인가?  (0) 2006.09.18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09.18 19:16

임재범..

외인구단.. 아시아나.. 등등.. 최고의 선을 달리다..
80년대 대마초 사건과 성추행등..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켜 구속..

한국의 마이클볼튼이라구 불림.. 일본의 락밴드 한국 진출을 막은
인물이라 평가됨..(순전히 본인생각)

조용필,이선희의 계보를 잇는 한국 최고의 가수..

'존경하는 인물들 > 임재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재범 - 겨울편지 신곡 발표  (0) 2008.02.01
임재범 동영상들..  (0) 2006.10.09
'고해' 기도문  (0) 2006.09.18
임재범 그는 누구인가?  (0) 2006.09.18
Posted by Pazzesco zmaster
2006.09.17 18:50


1935. 1. 1 서울生

1977. 6. 16 교통사고로 타계

학 력

1953서울대학교 화공학과 입학

1955미국 유학

1956Ohio주 Miami 대학 졸업(이학사)

1958University of Pittsburgh 대학원 졸업 (이학석사)

1960University of Pennsylvania 대학원 졸업 (이학박사)

경 력

1960~66University of Pennsylvania 물리학과 교수

Princeton, Institute of  Advanced Study 연구원

1966~73뉴욕 주립대학 (Stony Brook)  물리학과 교수

1973~77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이론물리학부장

University of Chicago 물리학과 겸임교수




관련서적 정보

이휘소 못다 핀 천재 물리학자(이용포저 / 작은씨앗)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35714&CategoryNumber=001001002001


이휘소평전(강주상저 / 럭스미디어)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140001&CategoryNumber=001001020009


이휘소(상) - 유학생활, 이휘소(중) - 프린스턴시절, 이휘소(하) - 보국의 길(공석하 / 뿌리)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70737&CategoryNumber=001001017001001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70739&CategoryNumber=001001017001001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70740&CategoryNumber=001001017001001

Posted by Pazzesco zmaster